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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김경일 교수의 <적정한 삶>#1

by 아늑한 의자 2025. 4. 2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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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삶 / 김경일

불안은 나를 지키기 위한 신호였습니다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자꾸 멈춰서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실용적이고, 가성비 좋은 책이다. 이런 좋은 책은 책값을 더 쳐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님 여러 권 사야 되나 싶다.
어쨌든 좋은 이유는 깊이가 있고 논리적이다. 여러 연구들을 예시로 들어주니 더욱 신뢰가 간다. 물론 하나하나 다 따져봐야 하긴 하지만,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다.


인간이라는 기계를 쉬게 하는 감정의 기술

기계를 오래 쓰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것, 그리고 주기적으로 멈추는 것. 인간도 결국 일정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기계라면, 움직임과 쉼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은 다양하다. 흥미, 호기심, 지루함, 불안 등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자극이고, 반대로 ‘지쳤다’는 느낌은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경고등이다. 그렇다면 무한히 달려가는 인간을 멈추게 하는 감정은 뭘까?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만족’이라 부른다. 만족은 인간을 쉬게 만드는 꽤 효율적인 제동장치다. 하지만 인간의 진화 과정 속에서 이 ‘만족’은 제대로 길들여지지 못했다. 30만 년 동안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과 결핍’을 감지하는 능력은 예민하지만, ‘만족감’에는 무감각해져 있다. 이제는 이 감정을 섬세하게 다듬고, 내 편으로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은 판단력의 핵심이다

하버드 대학 제니퍼 러너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판단과 결정의 순간, 뇌에서는 변연계(감정을 다루는 영역)와 전두엽(이성을 다루는 영역)이 동시에 작동한다.
술김에, 홧김에 내리는 엉뚱한 결정은 이 두 영역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생긴다. 좋은 판단력을 가지려면 감정을 인식하고 다루는 능력이 필요하다.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단지 참거나 억누르는 게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제품 개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도 감수성이었다. 그는 기능이 아닌 감정,
즉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각을 중시했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다. 그 감정을 명확히 인지하고, 조절하고, 풍요롭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더 나은 일상을 여는, 작지만 위대한 비밀이다.


진통제는 마음에도 필요하다

허리가 아플 때 먹는 타이레놀. 그 약효는 허리로 가는 게 아니라 뇌로 간다. 전두엽 가운데에 위치한 ‘전측대상회(ACC)’라는 뇌 부위가 통증을 처리하는 중심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ACC’가 신체 통증뿐 아니라
‘관계에서 받은 상처’도 처리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왕따를 당한 실험자에게 3주 동안 타이레놀을 복용시킨 연구 결과, 심리적 상실감이 완화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실험은 마음의 고통도 ‘몸의 고통처럼’ 다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슬플 땐 따뜻한 음식을 먹고,
지쳤을 땐 침대에 누워 쉬어야 한다. 그건 몸뿐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아플 땐 스스로를 다정하게 돌보는 것, 그게 가장 좋은 치료다.


우울은 행동으로 빠져나온다

우울은 자동차에 기름이 없는 상태와 같다.
움직일 힘도, 생각할 에너지도 고갈된다.
이럴 땐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다.
먼저 물리적인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잘 먹고, 걸으며,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멘탈과 체력은 같은 배터리를 쓰니까.
그리고 나쁜 생각이 밀려올 때를 대비해
작고 긍정적인 ‘행동’을 먼저 실행해보자.
운동하기, 일기 쓰기, 청소하기.
단 5분이면 충분하다.
내 경우엔 하드디스크 정리가 큰 도움이 됐다.
무려 17만 개의 파일 속에서
하루에 하나씩 지우다 보니
7개월이 지나고, 마음도 함께 정리되었다.


감정의 종류를 구분하자

불편함은 ‘일어나선 안 되는 상황’에서,
상실감은 ‘좋아하던 것을 잃었을 때’ 발생한다.
불편함은 제거해야 하고,
상실감은 대체해야 한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차려야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내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그게 행동의 중심축이 되어준다.


분노의 시제는 과거다

분노는 현재에서 오는 감정 같지만,
실은 과거에 대한 기대가 꺾였을 때 일어난다.
우리는 ‘예측’과 ‘신뢰’를 자주 혼동한다.
예측이 틀리는 건 당연한데,
그걸 ‘신뢰가 배신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격한 분노가 생긴다.
분노를 잠재우려면,
지금의 사실로 설득하려 하지 말고
문제가 발생한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안은 전염된다

무기력은 분위기를 타고 전염된다.
실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무표정한 이미지 하나가
과업 수행 능력을 떨어뜨리는 실험 결과도 있다.
조직이나 가족 안에서도
‘안 될 것 같아’, ‘귀찮아’라는 말은
잔잔한 호수에 파문처럼 퍼진다.
특히 통찰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가장 먼저 불안을 감지하고
무기력이라는 방어 기제로 반응하게 된다.


걷기, 감정의 브레이크

화를 조절하고 싶다면 일단 '걷자'.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면 뇌는 반응한다.
뇌과학적으로 발뒤꿈치가 지면에 닿을 때
불안과 화를 만드는 편도체의 활동은 진정되고,
새로운 생각을 관장하는 해마는 활성화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소요학파’를 만들며
걸음을 철학이라 여겼던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감정은 무한하다, 경계가 필요하다

감정은 총량이 없다.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고,
억누를수록 강해진다.
그래서 ‘감정의 경계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
경계선이 생기면 뇌는
“그 사람이 문제야”에서
“내가 왜 화가 났지?”로 돌아간다.


자아고갈과 나쁜 습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고갈’은
의지력도 체력처럼 바닥이 난다는 뜻이다.
쿠키 실험처럼,
이미 참느라 에너지를 다 쓴 사람은
다른 일에 집중할 힘이 없다.
감정을 참는 것도 체력이다.
그래서 나쁜 습관은 힘들고 지쳤을 때 튀어나온다.
습관은 없앨 수 없고,
좋은 습관을 덧씌우는 수밖에 없다.


불안을 역이용하자

불안한 사람은 시야가 좁아진다.
이럴 땐 원대한 비전보다
‘작고 구체적인 행동’이 효과적이다.
작고 만만한 일 하나를 하자.
일을 미니게임처럼 쪼개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는 방식은
불안을 줄이고 성취감을 높인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로 기록된다.
3점짜리 성취를 자주 경험하는 것이
10점짜리 성취보다 훨씬 더 강한 성장의 힘을 가진다.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불안은 결코 이겨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켜두는 조용한 경고등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이
‘마음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면서,
마음이 아플 땐 왜 그렇게 ‘괜찮은 척’을 했을까.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다.
불안한 나를 미워하지 않고,
조금씩 달래보는 연습.
이 책은 그 시작점에 작은 불을 켜주었다.
그리고 이 감정을 이해할수록,
내 삶도 훨씬 더 부드럽고 따뜻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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