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아요.”
어느 날 문득, 내 아들의 머릿결을 보다가 문득 ‘어린 왕자’가 떠올랐다. 노란 곱슬머리는 아니지만, 햇살 아래 자연갈색 머릿결이 은은히 빛나고, 창백하면서도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얼굴선은 마치 책 속 왕자님과 꼭 닮아 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이 책을 꺼냈다.
『어린 왕자』의 첫 장면.
비행사였던 화자가 여섯 살 때 처음 그린 그림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었다.
어른들은 그것을 모자라고 말했고, 아이는 실망 끝에 화가의 꿈을 접고 만다.
우연일까? 지금 내 아이도 여섯 살이다. 내가 이 책을 다시 펼친 건 아마도 그 나이에 깃든 ‘무언가’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요. 자꾸 설명해 줘야 하니까요.”
이 대목을 읽을 때, 나는 다짐한다. 언젠가 내 아이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면, 나는 그것을 모자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비행기의 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화자는 그곳에서 작은 목소리를 듣는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요."
그리고 조용히,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
양의 그림을 몇 번이나 고쳐 그린 끝에, 상자 속에 양이 있다는 상상력을 담아 그려주자 어린 왕자는 웃으며 말한다.
“내가 원한 게 바로 이거예요.”
이 장면에서 울컥했던 건, 내 아이도 언젠가 상자 속 양을 상상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 상상에 함께 웃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어린 왕자가 말한다. “바오밥 나무는 아주 어릴 때 뽑아야 해요.”
바오밥 나무는 별을 파괴할 정도로 위험하지만, 막 싹틀 무렵에는 장미와 비슷하게 생겨 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매일 아침 세수하듯 별도 돌봐야 한다는 그의 말은, 습관의 중요성에 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아이들아, 바오밥 나무를 조심해!”
책 속 비행사가 목소리를 높여 외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작은 교훈은, 내가 아이에게 매일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난 어린 왕자가 들른 소행성들에는 이상한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혼자 명령을 내리는 왕, 자신만 칭찬받고 싶은 허영가, 이유도 없이 술을 마시는 술꾼…
그들은 모두 외롭고도 이상했다.
어린 왕자는 그런 별을 떠나며 말한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지구.
여기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만나고, 장미를 생각한다.
지구에는 수많은 장미가 있었지만, 자신이 돌본 단 하나의 장미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다.
"길든다는 건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거야."
그래서 여우는 말한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설레기 시작할 거야.”
이 장면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엄마가 되어 다시 읽을 때의 감정은 다르다.
나는 매일 아이를 기다리는 존재이고, 이미 길들여져 있는 존재였다.
“꽃에게 가시는 왜 있는 거죠?”
비행기를 고치느라 바쁜 화자는 무심코 대답한다.
“아무 필요 없어. 꽃들의 심술이야.”
그 말에 어린 왕자는 서운해한다.
나도 모르게 던진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에 가시처럼 박히는 건 아닐까.
그 뒤로 나는 더 조심스레 말하게 되었다.
아이의 장미에게도 가시가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
마실 물 한 방울 남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우물을 찾아 사막을 걷는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에요.”
사막 같았던 나의 육아의 시간.
그 속에 아이와의 연결, 웃음, 따뜻한 눈빛이 오아시스처럼 숨겨져 있었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다시 다짐했다.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건, 아이에게 친구 같은 엄마라는 것.
아이의 상상을 이해해 주고, 모른다면 적어도 “이게 뭘까?”라고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사람.
어린 시절의 나도 분명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 아이에게 그런 어른이고 싶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어린 왕자
"너의 보아뱀 그림을 알아볼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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