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못 하는 사람의 작지만 단단한 기록
어렸을 때부터
나는 뭔가를 “해달라”는 말을 못 해보고 자라왔다.
용돈을 달라고도, 무언가를 사달라고도..
부탁 한 번 해본 적 없이 자랐다.
자꾸 눈치만 보다가
그냥 참는 게 편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부탁’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는 울림 없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니
그 말 한마디가
자존심이 아니라 ‘존재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거 해줄 수 있어요?”
“이건 제가 좀 어려워요.”
“이건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이
나에겐 다른 사람보다 너무 벅차고 무거운 말이었다.
그래서 그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던 날
나는 하루 종일 마음이 무너졌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작은 혁명이었다.
그 작은 말 한마디를 하기까지
나는
몇 번이나 마음속에서 연습하고,
몇 번이나 말끝을 삼켰다.
누구보다 조용했던 아이가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기 시작한 날.
그건
누군가의 눈에 들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서 나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제 나는 조금씩 배우고 있다.
부탁하다가 마음이 다쳐도
그게 틀린 게 아니라는 걸.
거절당했다고 내가 틀린 사람인 건 아니라는 걸.
“부탁하는 법”을,
“기대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그리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나 자신”을.
오늘은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나는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은 하루를 살았다.
그래서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상황이 고맙기도 하다.
나를 작아지게 만든 어떤 말
그 앞에서 움츠러든 내 마음 덕분에
나는 오늘 ‘진짜 내 모습’을 더 깊이 마주할 수 있었다.
사실, 미움은 잠시였고
이 깨달음은 오래 남는다.
다락방 마무리
그러고 보면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그 사람에게도
어쩌면… 이제는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거절이 내 마음을 찌그러뜨리긴 했지만
덕분에 나는 내 안에 오래 묵혀두었던 감정을
이렇게 꺼내어 마주하게 되었으니까요.
이 아픔이 지나고 나면
나는 조금 더 나를 잘 이해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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