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싸고 있다.
다시, 한 달 살기 여정이 시작된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미니멀’은 늘 계획일 뿐, 현실이 되기 어렵다. 상비약부터 수영복, 보드게임, 인형, 그리고 아이와 내가 고르고 또 고른 책까지. 가방은 어느새 묵직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짐을 줄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오늘 티스토리에 올린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떠오른다.
‘소유하지 않음’의 자유에 대하여 –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어쩌면 우연인 듯
오늘 싸는 이 여행 가방과 그 책의 문장들이 묘하게 겹쳐진다. 짐을 덜어내는 일은 단지 가벼운 캐리어 하나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다.
불안을 덜어내고,
과욕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만을 고르는 일.
법정 스님의 문장처럼,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시간이다. 사실 우리가 여행 가방에 넣는 건 물건만이 아니다.
혹시나 부족할까 봐,
혹시나 불편할까 봐,
그 모든 ‘혹시나’의 마음이 함께 들어간다.
짐을 줄이기 어려운 이유는
물건이 아니라 그런 마음들을 놓기가 어려워서다.
이번엔 달라지고 싶었다.
필요하면 현지에서 구하자는 결심.
없으면 없는 대로 하루를 살아보기로 한 용기.
무엇보다 ‘완벽한 준비’가 아닌 ‘가벼운 마음’을 챙겨가고 싶었다.
짐을 줄인다고 해서 모든 것이 편해지는 건 아니다.
그저 덜 복잡해질 뿐이다.
마음이든 가방이든
무게를 줄이는 순간 삶은 조금 더 부드럽게 흘러간다.
우리는 떠나는 순간보다
떠날 준비를 할 때 더 많은 것을 느낀다.
정리하고, 고르고, 포기하면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마주하게 되니까.
여행이란 결국
무언가를 더 가지려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덜어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 여행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장면은
예쁜 원피스도, 멋진 스팟도 아닌
가방을 덜어내던 그 순간의 ‘마음’일지 모른다.
내게는 어쩌면 ‘덜어냄’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없는 대로 살아보는 용기,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진짜 여행에 꼭 필요한 짐 아닐까.
가방을 닫으며 다시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놓고 가기로 한 걸까.
물건만 덜어낸 게 아니라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엄마니까 다 준비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혹시라도 부족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까지.
비워낸 그 자리에
햇살이 스며들 듯 따뜻한 여유가 들길 바란다.
여행은 물건을 챙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이기도 하니까.
다락방 마무리
가볍게 떠나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그건 물건을 덜어내는 일이 아니라
불안을 내려놓는 마음의 연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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